CPE 탄생의 역사와 영적 돌봄터의 변화(하)
미국 CPE의 창시자와 영적 돌봄터의 변화
CPE 창시자는 미국 장로교 목사인 안톤 보이슨(Anton Boisen, 1876~1965)이다. 그는 ‘CPE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된 후 1920년, 그의 나이 43세 때 갑자기 정신발작을 일으켜 가족들에 의해서 정신병원(Boston Psychopathic Hospital)으로 옮겨지게 된다. 병명은 긴장성 정신분열증으로, 회복불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안톤 보이슨은 입원해 있는 동안 읽었던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을 통하여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고 치료하려고 노력한 결과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전 어느 날, 그는 ‘종교와 심리학 사이에 가로놓인 벽을 허무는 꿈과 같은 환영’을 보게 되었으며 이것은 나중에 그가 처음으로 실시한 CPE의 기본 정신이 된다.
15개월 간의 정신병원 생활을 끝내고 보스턴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멘토였던 엘우드 우스터 신부의 ‘엠마뉴엘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또 그의 친구인 하바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던 리차드 캐봇(Richard Cabot)을 만나게 된다. 당시 신학생들을 위한 ‘병원현장 실습 교육’을 하고 있었던 리차드 캐봇은 ‘임상 신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제창한 사람이다.
1925년 6월 20일, 보스턴 근교의 정신병원인 우스터 주립병원(Worcester State Hospital)에서 원목자로 일하던 안톤 보이슨은 성공회 신학생 4명을 대상으로 미국 최초의 CPE 교육을 실시했다. 안톤 보이슨은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은 바로 살아있는 인간 기록(Living Human Documents)을 대면하고 보살피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하곤 하였다. 이 말은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적 지식은 살아 숨쉬며 끊임없이 삶에 영향을 주는 과거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환자들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에 사목자 자신을 바로 그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이 표현은 CPE 교육방법론의 핵심이 된다.
한편, 안톤 보이슨은 CPE 실습지는 ‘정신병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정신병원 환자들의 증상 대부분은 ‘종교적 망상과 환청’이었고, 신학생들은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환자들의 이런 정신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스터 주립병원에서 안톤 보이슨의 제자에게 CPE 훈련을 받은 러셀 딕스(Russell Dicks) 목사는 “신학생들이 성직자가 된 후 만나는 신자들은 대개 정상인들이기에 일반병원에서도 CPE 훈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반병원으로는 최초로 하버드 의과대학병원인 매사추세츠주 주립병원(M.G.H.)에서 CPE 훈련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후 CPE는 정신병원에서 일반병원으로 확대되었고, 어린이병원, 호스피스병원, 양로원, 교도소, 군대, 학교, 쉼터, 복지기관, 지역교회 등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곳이면 어디든 CPE 실습지가 되었다. 교육 대상도 종교를 초월한 성직자, 수도자뿐만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에게도 확대되었다.
예수님의 치유 현장인 일상생활을 따라가는 CPE의 영적 돌봄터
CPE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된 오늘날, CPE 전문가들은 CPE 실습지인 영적 돌봄터가 공간을 초월해 일상의 삶의 터전에서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점점 더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CPE 전문가들은 위기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늘 우리 주변에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영적 돌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에서 CPE를 통해 영적 돌봄을 하는 것은 치유의 권위로 이 세상을 ‘치유공동체’로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내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CPE 교육과 훈련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치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치유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글 _ 정무근 다미안 신부(한국CPE협회장·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