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몸 신학 교리] “천사들과 같아져서…”의 의미

이승훈
입력일 2025-05-21 09:44:29 수정일 2025-05-21 09:44:29 발행일 2025-05-25 제 344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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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靈)에 대한 몸의 새로운 순종
죽음에 종속됐던 육체성이 참된 생명으로 회복되는 것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 22,30; 마르 12,25; 루카 20,36)는 말씀은 인간의 본성이 천사의 본성으로 변화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부활 후 인간의 본성이 천사처럼 된다면, 그것은 부활이 아니다. 반육화되거나 비인간화된다면 그것도 부활은 아니다. 이 말씀 전후에서 드러나는 부활의 진리는 인간의 종말론적 완성과 행복이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만의 상태가 아님을 명확히 하며, 모든 이해와 표현을 초월한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인간 본질을 회복함을 뜻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고, 고통과 시련을 거치면서 하느님과 같은 신성(영)이 자신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영의 힘은 인간의 본성을 영화(靈化)로 이끈다. 그러므로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것은 영에 대한 몸의 새로운 순종을 의미한다. 영화는 주체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기울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부활은 세속적인 시간 안에서 죽음에 종속되었던 인간의 육체성이 참된 생명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66과 5항) 

교리서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순간 일어나는 영화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영화’가 인간 이해의 새로운 출발점이기에, 그 결정적인 의미들을 깊이 들여다봐야 막연한 부활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는 선택과 결정을 하고 행동할 때가 많다. 육에서 오는 것과 영에서 오는 것의 대립을 어둠에서 빛이 들어올 때까지 수없이 체험하지만, 영의 영향권에 있는 곧 ‘종말의 인간’은 그 대립에서 자유로워진다. “‘영화’란 단순히 영이 몸을 다스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는 영화를 영이 몸에 완전히 스며들어, 영의 힘이 몸의 에너지로 스며드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67과 1항) 스며들어 생명의 힘이 확장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한다. 영이 받은 사명이다.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상 삶에서 일어나는 대립과는 다른, 몸에 대한 영의 결정적 승리를 말한다. 완전한 참여로 이루어지는 영화다. 교황은 부활한 이들이 갖는 ‘몸의 영광’을 ‘신화된 영화’의 종말론적 결실이라 말한다. 교황은 이 상태가 ‘한처음’과는 다른 차원이라 한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가 한처음의 상태를 회복하는 정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새로운 인류의 완성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영화’의 상태를 넘어 신화(神化)의 상태에 이른다. 그 모습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만날 수 있다. 제자들도, 마리아 막달레나도, 부르기 전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부르자 바로 ‘주님’이라 고백했다. 이어지는 부분과 변화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그 자체로 신이지만 인간은 영에 의해 영화됨으로서 신화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23, 1136항) 영은 성령을 말하고, 종말론적 인간은 성령의 힘이 몸에 스며들어 삼위일체의 신성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내재해 있는 하느님의 영이 그 반대되는 세력들과 대립을 거치면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과 영적 앎이 진·선·미로 성장된다. 결국 신화는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특징을 가진 친교로 이루어진다.

교리서 66과 6항은 이렇게 정리한다. “사실 부활의 진리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종말론적 완성과 행복은 몸으로부터 분리된(플라톤에 따르면 ‘해방된’) 영혼만의 상태로 이해할 수 없고, 결정적이고 완전한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몸과 영혼의 일치를 통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통합된’ 인간 상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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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 왕직 재속 선교사회)